이번 사건으로 아마도 새롭고 신선한 제도나 규제가 또 등장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은 다시 강화될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논점에서 이야기했듯이 국민감정을 잠재우는 솔루션으로 제도와 기관의 신설하는 일은 이미 사회의 버릇이 되었다.
그런데 마치 개인정보를 '불가침의 인격권'인양 정의하며 국민의 편을 드는 듯한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제법인 상태다. 게다가 이미 이 체제는 조건반사적으로 '본인 동의'를 누르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는 현 상황 덕에 사회적 비용만 발생시킨 채 사문화되어 가고 있다.
개인정보란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에 입각한 법률이 신규서비스의 진입 및 생성을 저해하고 있는 셈인데, 사회에 100% 은닉 가능한 개인정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객이라는 입장으로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적절히 거래하여 더 좋은 서비스와 혜택을 취하는 것이 상업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 동네 상점 주인들은 내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를 알아 보고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기억, 즉 기억된 나의 개인정보는 나의 것이 아닌 그의 것이다. 그의 노력에 의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 기억에 의해 성립되는 비즈니스는 인터넷에 수도 없다. 구글도 페이스북도 네이버도 모두 이런 류의 비즈니스로 흥했다. 그 트렌드는 빅데이터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의 존재에도 불구, 대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이 벌어지는 사회: 개인 정보를 재산이 아닌 일종의 책임으로 관리하다 보니 귀찮아서 아웃소싱하는 사회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물통이 깨졌는데, 뚜껑만 좁히면 무엇하나.
이미 Lessig등은 CODE 등의 저서를 통해 개인정보라는 '재산(property)'이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는 사회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처럼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척 해주지만, 결국 무엇도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현행 개인정보 보호체제.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부합하지 않은 정책과 조치에 대해 지나치게 상세 규정하는 한국 법률은, 개인정보 보호와 자기결정권 활용에 기반한 플랫폼의 등장을 저해할 뿐이다.
"으아아악, 큰일 났어! 정부, 너네 뭐하고 있는거야?"
"어... 기업들을 단속하려했지만 역부족이었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해서 보여주겠어!"
사회적 비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정의를 구현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은, 위정자가 즐겨쓰는 방책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비용은 사회의 생산성과 혁신으로 돌아야 할 영양을 뺐고 서서히 병들게 한다. 관치 사회주의에 의한 불황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