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이번 런던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게된 여자배구대표팀입니다.
하필이면 세계배구의 강호들 미국(1위), 브라질(2위), 중국(3위), 세르비아(6위), 터키(8위)이 모여있는 B조에서 예선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순위는 15위로 수치상으로는 조 최하위로 예선탈락이 예상되던 전력. 그러나 ...
7월 28일: 미국전 1-3 패
7월 30일: 세르비아전 3-1 승
8월 1일: 브라질전 3-0 승
8월 3일: 터키전 2-3 패
8월 5일: 중국전 2-3 패
세계2위의 브라질을 이기고 세르비아도 이기는 이변을 일으켰고. 터키, 중국에게는 패배하였으나 팽팽한 풀세트 접전으로 승점을 챙겼고, 그 결과 조3위로 8강에 진출해버립니다. 그리고 이어 우리나라 시간으로 7일 새벽5시에 벌어진 세계4위 이탈리아와의 8강전.
8월 7일: 이탈리아전 3-1 승
이런 이변이... 이렇게 여자배구팀은 4강에 진출하며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만에 메달을 기대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죠. 그리고 여자배구팀의 이런 선전의 배경에는 세계 배구계의 스타인 김연경 선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결과는 아시다시피 4강전에서 미국에 패, 오늘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하여 아쉽게도 4위에 그치고 맙니다. 36년만의 메달획득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수들의 선전을 둘러싼 배경을 살펴보면, 사실 4강 진출은 기적과 같은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준결, 3-4위전에서의 승리까지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던 거죠. 아래 기사를 봅니다.
B조 예선 통과 후의 기사입니다.
"협회의 한 전무이사는 겨우 5000달러(약 560만원)를 격려금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배구 관계자들은 한국이 '죽음의 조'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코칭스태프에게 한통의 축하와 격려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 여자배구는 핸드볼보다 더 인기없는 종목이 되어 버린건가요...
2012/8/7 10:44 오후 기사를 보면 비인기 종목이라는 핸드볼협회에서도 준비해놓은 보상금이 배구협회에서는 아예 없다고 하는 군요. 물론 보상금이 중요한 건 아닐 수 있습니다. 선수와 코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지원이 훨씬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일겁니다.
오늘 일본과의 경기 후 트위터의 관련 내용입니다.
아.. 이게 무슨 동계올림픽에 봅슬레이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리그와 프로연맹, 협회까지 있는 나라에서 이게 무슨 비극인지 모르겠습니다.
올림픽 전에 김형실 감독은 사비 600만원을 들여 반지를 맞춰서 선수들과 나누어 끼웠다고 합니다. 주요 경기에서 부상 중인 김사니 선수를 세터로고집하여 팬들에게 원성을 많이 들었지만, 김형실 감독은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배구계의 얇은 선수층에서 겨우 선발한 대표팀을 데리고 지원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오늘 일본 경기 후 김형실 감독 인터뷰입니다.
힘든 환경에서 고군분투한 선수들이 너무 안쓰럽네요. 특히 김연경 선수는 이번 올림픽 본선 8경기를 단 몇 분도 쉬지 못하고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전력의 60~70%를 차지하는 공격수인데다 백업 선수들이 약하니 어쩔 수 없었겠죠. 사실 김연경 선수는 무릎 수술이 아직 완쾌되지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보다는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하고 경기 중에는 투지를 불사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직 결승전이 남아있지만 이번 올림픽 공격수 랭킹을 보면 김연경 선수가 압도적으로 1위입니다 (
http://www.fivb.org/vis_web/VOLLEY/WOG2012/PDF/P5-WOG2012-f3.pdf). 스파이크 185개, 득점 207점으로 2위인 미국의 데스티니 후커 선수와 격차가 큽니다. 김연경 선수가 얼마나 잘하는 선수인지 알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대표팀이 김 선수에게 얼마나 의존도가 높은지도 알 수있는 기록입니다. 다른 선수들도 열심히 해주었지만 좀 더 노련한 세터와 강력한 오른쪽 공격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패배한 경기들은 대부분 리시브 불안, 위협적인 공격으로 이어주지 못하는 토스가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는 거죠. 오늘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준 일본의 경우는 남자는 야구, 여자는 배구로 인식될 정도로 여자배구의 인기가 높고 많은 클럽팀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선수 층은 우리나라와 비할바가 아닙니다. 이렇다 보니 특정 선수에게 많이 의존하게 되고 하루씩 걸러 8경기를 치룬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눈에 띄게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제 다시 올림픽에서 이렇게 선전하는 우리나라 여자배구팀을 볼 수 있을까요? 그것이 불투명하기에 이번의 결과가 더욱 아쉽습니다. 그것이 불투명한 이유는 앞서 씌여진 내용들이 다음 올림픽 때까지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입니다.
김연경 선수는 올해 초 이적문제로 원소속 구단인 흥국생명으로부터 임의탈퇴된 상황입니다. 선수 개인으로서 올림픽 후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소속팀 계약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 김연경이다. 소속팀을 둘러싼 분쟁과 관련해 김연경은 "그동안 올림픽에만 신경을 썼는데 힘이 빠지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이 든다. 당분간은 쉬고 싶다"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태에서도 전 경기에서 투지를 불사른 김연경 선수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물론 한송이, 한유미, 김희진, 정대영, 김해란, 김사니, 이숙자, 양효진, 황연주 등 모든 선수들에게도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주일 동안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