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큐레이션의 역할이란 그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듯이, '창조'라는 숭고한 작업도 의외로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이미 누군가는 소박하게라도 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누군가가 이야기해 줄 때까지
의외로 그 창조자 본인은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의 장대함을 깨닫지 못하곤 합니다.
바로 이 '의미 부여의 소중함'이야 말로 큐레이션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중한 의미 부여는 인류가 줄곧 해왔던 일입니다. 아이를 칭찬하는 어른, 영웅을 칭송하는 대중, 사연과 이야기를 소중히 하는 문화...
그러나 이 개별적 의미 부여는 20세기를 전후로 매스미디어에게 일임됩니다. 큐레이션의 배후에 있는 것은 "매스미디어의 (환상의) 붕괴"라는 변화에 있습니다. 여기서 '환상'을 굳이 붙인 이유는, 매스미디어라는 개념 자체는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 않으니까요. 신문은 붕괴되고 있지만, 그 매스미디어의 왕좌 자리는 포털이 대신해 차지해 가고 있습니다. TV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하나의 시대, 산업의 시대가 그렇게 쉽게 가지는 않을겁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가 본래 지니고 있던 사회 통합 기능이랄까 장대한 그리고 과장된 어젠다 셋팅 기능에는 분명 금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나타내는 수많은 현상 설명어들, 웹2.0, 소셜미디어, 그리고 다시 큐레이션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리고 정황 증거로 20세기적 '기호소비'가 흔들리게 됩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갈구하는 일에 더 이상의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분명 등장하게 되고, 저 역시 이들에 속합니다. 어제 오래간만에 GQ를 통독했습니다만 단 하나의 물욕도 느끼지 못하고 맙니다.
대신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이어짐의 소비'가 그 후에 나타나게 됩니다. 대신 친한 누군가가 추천한 그것을 사기 위해 나는 지금 쇼핑몰을 들락날락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존 소셜 커머스는 그냥 매스미디어적 쇼핑 채널 하나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
본서는 한낱 아웃사이더에 있던 이들이 큐레이션의 힘에 의해 어떻게 메인스트림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지를 면면히 이야기합니다. 상식, 인기, 이상한, 듣보잡, 대세 등 지금까지 매스미디어의 세례에 의해서만 구분지어졌던 일들이 앞으로 어떻게 '각자의 취향과 시점을 지닌 이들'에 의해 새롭게 '이야기'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의 웹도, 웹2.0의 총아였던 구글과 네이버도 결국은 알고리즘 혹은 직원의 프로듀싱에 의해 탄생한 디지털 매스미디어였음을 생각해 보면, 아직 진짜 변화는 능선에 올랐을 뿐입니다.
정보의 수동적 소비자였던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가치관과 시점을 가지고 노이즈 속에서 시그널을 끄집어내 의미를 부여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현실세계의 큐레이터가 자격을 필요하는 고급직종임에는 이유가 있음을 큐레이션에 빠져 버린 지금에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만의 이야기를 꾸려 가는 즐거움과 기쁨을, 설령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창조 당사자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일의 보람을 알게 된다면, 아,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는 과정"에 살아 가는 일의 의미가 있었음마저 깨닫게 됩니다.
본업이 큐레이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큐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늘 반가운데, '큐레이션의 시대'라는 책이름은 위와 같은 의미에서 과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