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공식 입장이라는 타이틀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곤 하는데, 장사하는 사람들 100% 믿기는 힘들지요. 큰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좋은걸 좋다고 할 수도 있고, 좋은걸 나쁘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말은 그때그때 바뀌고, 진실은 가려져 있을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등장해 감춰져 있는 진실이 공개될때가 있지요.
지금 HP와 오라클이 벌이고 있는 법정 공방전도 이런 모양새입니다. 알려지면 거북한 얘기들이 서로의 폭로에 의해 대중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HP와 오라클의 법정 공방전은 오라클이 HP가 판매하는 인텔 아이테니엄 프로세서 기반 서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기업용 SW 시장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오라클이 HP 주력 제품군인 아이테니엄칩 기반 서버에서 돌아가는 SW를 만들지 않겠다는건, HP로선 엄청난 타격입니다. 오라클은 아이테니엄칩 지원 중단의 명분으로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HP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지요. 그러면서 소송을 걸게 됩니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황인데, 봐주는건 없겠지요.
오라클은 자신들의 결정이 잘못된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HP 내부 문건들을 공개합니다. 어떤 얘기하면 인텔은 아이테니엄 그만 하고 싶은데, HP가 인위적으로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아이테니엄은 안되는건데 말이죠. 관련한 아래 글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생생한 얘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폴 오텔리니 인텔 CEO는 “아이태니엄 사업으로 더는 막대한 손실을 보지 않아야 한다”며 아이태니엄 CPU 단종 의사를 분명히 했다. 톰 킬로이 인텔 부사장은 아이태니엄 CPU 로드맵에 대한 두가지 대안과 그에 따른 비용분석을 제시한다. 대규모 지출계획이나 불시착 등 두가지 대안 모두 매출 급감을 수반하는 계획으로 언급된다. 톰 킬로이 부사장은 “2002년 나온 맥킨리(아이태니엄2의 코드명)의 핵심 아키텍처가 투퀼라 라인에서 한계에 근접했다”라며 “2011년 이후 강력한 로드맵을 창조해야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예전에 서버 분야를 취재하면서, 인텔이 아이테니엄 대신 일반 x86서버에 탑재되는 제온칩에 집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한 바 있습니다. 당시 HP와 인텔은 아이테니엄의 미래 비전을 강조했지만 주변 상황은 여러모로 아이테니엄에 불리한 상태였습니다. 오라클에 앞서 MS나 레드햇도 아이테니엄에 대한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혔었거든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차기 서버 운영체제(OS)부터는 인텔 아이테니엄 프로세서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x86칩 성능이 아이테니엄이 담당해왔던 핵심 업무를 소화할만한 신뢰성과 확장성을 갖췄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오라클이 공개한 문건들을 보니, 인텔은 아이테니엄에 대해서는 기대를 접은것 같고, HP가 자금을 투입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테니엄의 미래 가치를 강조할 수 있을까요? HP는 내부적으로도 유닉스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핑크 부사장은 HP-UX를 살리기 위한 선택지로 4가지를 제시했다. 시나리오1은 인텔에서 2014년 내놓을 마지막 아이태니엄 CPU 킷슨과 함께 유닉스 서버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이다.
시나리오2는 HP-UX를 x86칩에 포팅하고, 슈퍼돔이라 이름붙인 x86 블레이드 서버시스템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는 벨류비즈니스인 유닉스 시장을 x86처럼 규모의 경제로 재정의하는 작업을 수반하게 된다.
시나리오3은 오라클과 연합해 IBM에 대항하는 전략이다. OEM 전략으로 이름붙인 이 전략은 구체적으로 HP가 오라클에게 솔라리스 OS 판매권을 얻어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는 내용을 담는다.
HP와 오라클의 폭로전이 오라클에게만 일방적인 구도는 아닙니다. HP도 반격을 했지요. HP가 공개한 오라클 내부 이메일을 보면 썬 하드웨어를 저평가하는 일부 경영진들의 코멘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썬 하드웨어는 허접하다는 겁니다.
HP CEO 출신인 마크 허드 사장을 씹는 내용도 있는걸보니, 그리 오래된 얘기는 아닌 듯 합니다. 아무튼 HP의 폭로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썬 하드웨어에 대해 핑크빛 전망으로 도배한 오라클의 공식 코멘트는 엄청난 거리가 있지요.
오라클의 부사장들은 썬 매출에 대한 압박을 노출하고 있다. 마크 허드 사장에 대한 혐오도 드러난다.
케이스 블록 부사장은 “누구도 썬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선 고객조차도”라며 “썬은 죽었다(It's dead, dead, dead)”라고 표현한다. 이어 “아무도 썬을 팔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마지막엔 "Pig with lipstic"라고 표현한다. 이는 미국 슬랭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뜻한다.
HP는 이에 대해 “오라클이 썬을 절름발이 개로 표현했고, 유닉스 시장에서 스팍 플랫폼 점유율을 높이려 시도해야 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오라클과 HP의 공방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폭로전이 계속될수도 있지요. 이렇게 되면 불편한 진실은 시리즈로 발전할 수도 있겠네요. HP가 판매하는 아이테니엄 서버, 오라클이 판매하는 옛날 썬 하드웨어의 후속 제품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