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의 경직된 위계질서를 없애보자고 호칭을 바꾸는 기업들이 많다. 층층이 구분된 호칭을 '~님'이나 '~매니저'로 일원화 시키는 것. 한 때 화제가 되었다가 잠잠한 줄 알았더니, 첫 시도가 아니라 화제가 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바꾸는 회사들이 많은가보다.
물론 그런 변화도 시도해 볼 만 하다. 말이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러한 변화들이 문화의 변화에 의해 '촉발된' 변화가 아니라, '촉발시키기' 위해 강제되는 변화이다보니 영 어색한 순간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특히 기업문화 역시 한 기업만의 문화가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우선 대외용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뭔가 적합한 호칭이 있어야 부르기 편하지 않은가. '~~씨'가 원래는 하대하는 표현이 아니지만, 평사원이나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 보통이다 보니 '~~씨'라고 부르는 것은 어딘가 무례해보여 여러가지 고육지책이 생겨난다.
그래서 '~~님'이 요즘은 대안으로 좀 사용되는 듯. 하지만 '~~님'은 익숙해지기 전에는 인터넷 채팅 느낌이 든다는 것이 흠.
대내용으로도 문제가 있다. 직급이 낮았던 사원이야 상관없겠지만, 직급이 높았던 입장에서는 같은 호칭으로 불리우는 것이 왠지 낮아진 느낌이 들게 마련. 들은 이야기로는 그래서 '0매니저'와 '0매니저님' 으로 구분한다고.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 생각엔 현실적으로 꽤 중요한, '3음보'의 문제가 있다. 한국인은 3음보 호칭에 익숙하다. 김과장, 박대리, 이부장... 3음보 호칭들이다.
성을 생략하고 직접 부를때는 과장님, 대리님, 부장님. 부장이 대리를 부를 때도 '0대리'라고 3음보를 만들어서 부르지, 그냥 '대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리가 부장을 부를 때는 '부장님' 혹은 뒷담화시에는 '0부장'이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면 '0부장님'이라고 4자를 만드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매니저'나 기타 '님'은 3음보를 만들기가 조금 난감하다. 갑자기 바뀐 것도 어색한데다 입에 짝 붙는 호칭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가 호칭을 변화하려는 회사들에 단골로 선택되는 이유는 아마 영어라서 기존의 이미지들에서 좀 자유롭고, 다른 회사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2단어로 딱 떨어져서 입에 붙는 적당한 3음보 호칭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단어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