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끼깔나는 제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밑바닥까지 인간말종일리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 뒤 흉흉한 과거지사에 대해서는 그땐 젊은이의 치기와 열정이 앞서는 급한 성미 탓이었다며 적당히 얼버무리는 게 아니냔 거다.
일단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이폰3GS를 2년4개월째 쓰고 있다. 슬슬 질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훌륭한 물건이다. 요는 이걸 만든 회사 CEO가 잡스가 아니라 빌게이츠라도 이건희라도 별 상관 없지 않느냔 말이다.
애플 제품에 매료된 숱한 사람들이 잡스 CEO의 업적(이라 알려진 것)에 대한 호감만으로 그의 인간성을 윤색하는 현상은 인지부조화에 대한 방어기제가 아닌가 의문이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잡스의 천재성에 비례하는 그의 과거 패악질의 이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건 일종의 사기 아닌가? 적어도 공정한 거래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잡스가 5천달러를 벌었는데 4천300달러를 독차지하고 동업자 워즈니악에게는 나머지 700달러를 '공평하게' 반띵했다는 사실보다도, 실제 설계를 해낸 사람이 워즈니악이고 잡스는 그에게 가능성을 제시하며 독려했을 뿐이라는 묘사가 더 재미있는 부분이다.
요컨대 재주는 워즈니악이 넘고 돈은 잡스가 벌었다고나 할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능력은 일종의 사이비 교주 또는 선동가와 같은 능력이 아닌가. 물론 예시가 이모양이라 그렇지, 나는 이런 종류의 능력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잡스의 전체 생애를 관통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 이 능력은 그런데 그의 청년 시절에 상당히 나쁘게 쓰였고, 당시 주변사람들은 상당히 힘들어했을 것으로 짐작될 따름이다.
물론 잡스는 애플에서 한 번 쫓겨났다가 돌아온 뒤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 그 뒤 협상가적 수완을 발휘해 보수적인 콘텐츠 업계와 뜻밖의 딜을 성사시킨 것은 틀림없다. 기브앤테이크라는 기본을 지키면서도 애플이 전적으로 불리한 입장일 때 유리한 조건으로 사업상 계약을 진행한 사례는 협상의 본보기로 회자된다.
여담. 아마 잡스가 70~80년대가 아닌 200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냈으면 그때완 다른 이유로 사회생활하기 참 힘들지 않았을까싶다. 특이한 이력 탓에 요새 빈번한 신상털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든지 유튜브에 별명이 붙어 유명세를 탈 수도 있겠다. 연대기별로 몬타로마 돈초딩, 쿠퍼티노 월반남, 홈스테드 마약남, 리드대 퇴학남, 오리건 히피남, …
네. 누군가의 재주를 최대한 이끌어내 적절하게 제품화하는 것도 훌륭한 능력입니다. 다만 잡스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그 제품인 아이팟시리즈와 아이폰이 결정적인데, 그 제품과 어울리지 않게 더러웠던 성격이 유명하진 않은 듯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물에 느끼는 호감을 그 기원자에게 덧씌우는 현상은 흔한 것입니다. 항상 그게 일치하진 않는데, 무시하는 경향도 있더란 겁니다. 애플 제품가운데 꽤 성공을 거둔 것들을 접해 본 사람들이 그 기원자라 알려진 잡스에 대해 막연히 느껴온 생각을 관성처럼 유지한다는 얘기죠.
아이폰이랑 맥이 이렇게 대단한 제품이야! 우와 잡스는 천재야! 아 성격이 더러웠다지? 천재치고 성격 괜찮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음… 잡스를 못 믿었다면 아예 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 저는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전 잡스도 아니거니와 그 밑에서 일해본 적도 없어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이렇게 여쭤 보죠. 직원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 우선적 이유가 단지 경영자에 대한 신뢰 때문인가요? 제 생각에 경영자를 불신하지만 일 자체에 애착을 느끼거나 불만족스러운 업무환경에도 보상이 탁월하기 때문에 회사에 남아 있는 사례를 찾기가 더 쉬울 것 같거든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직원에게 불쑥 맡은 업무를 설명케하고 맘에 안 들면 잘라버리는 CEO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웬만한 CEO는 다 믿어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그런 일 당하면 바로 멘붕이에요.
직원들에게 본인만큼 준비를 하도록 예고하지도 않았으면서 질문 하나 던지고 자르는 건 부당해고죠. 물론 그 이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느닷없는 질문에도 대응하도록 평소 자기업무를 치밀하게 파악하게 만드는 효과를 기대한 걸지도 모르지만요.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