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세상은 영원히 계속 빨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클럭 속도는 마구 올라갔습니다. 절대적으로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1GHz CPU, 내년에는 2GHz, 후년에는 3GHz, 4GHz, ... 10GHz... 그러나 그런 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열을 뿜어댔고, 과도한 전력을 소모하고 말았습니다. 거대한 선풍기도 달고, 물로도 식혀봤습니다. 그렇지만 아래 그래프(파란선)에서 볼 수 있듯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한계에 다다른 컴퓨터는 무모하게 성능을 올리는 대신, 다소 느린 애들을 여럿 집어 넣기로 합니다. 성장의 한계 끝에 공유의 가치가 재발견되는 식인가요?
우리 인생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적으로 상투를 잡을 수 밖에 없는 날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사느냐(초록색선)와 상관 없이 오곤 합니다. 뜻하지 않는 한계란 그렇게 찾아 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인생은 싱글 코어 프로세서였습니다. 매년 나아지고 빨라질 수 있었던 싱글 코어였습니다. 빨라지면 상관 없었습니다. 명령어가 쌓여가도 빨리 처리했습니다. 과하게 쌓여도 자기계발(컴퓨터에서라면
명령어 파이프라인)로 헤쳐나갔습니다.
당면한 하나의 프로세스에 충실했습니다. 하나의 직장을 다녔습니다. 천직이란 주어진다고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달리면서, 언젠가는 exit해서 폼나게 살아야지, 혹은 여기서 참고 견뎌 은퇴하고 연금생활 해야지, 나름의 꿈을 꾸면서 프로세스를 묵묵히 수행합니다. 내년에는 나아질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싱글 코어의 삶은 순차적이고 조건적입니다. 승진하면 아내에게 선물을 사줘야지. 취직하면 하고 싶었던 운동을 해야지. 아이들이 크면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야지. 여유로워지면, 이 고비만 넘기면 ♥♥해야지...
그러나 프로세서의 파이프라인에 명령어가 마를날은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순차적이고 조건적인 우리는 늙어 갑니다.
우리들의 싱글 코어 프로세서는 내년에 업그레이드되지 않습니다. 더 빠른 나는 아마 당장 오지 않습니다. 광고와는 달리 멀티 코어 프로세서는 더 빨라지려고 나온 애들이 아닙니다. 성장이 잠시 멈춘 시대의 적응의 산물입니다. 대신 하나를 훨씬 잘하게 되는 삶이 아닌, 다른 것도 돌아 볼 여유를 가진 삶? 이런 것이겠지요.
멀티 코어 프로세서가 OS를 포함한 애플리케이션의 전격 수정을 요하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일이라는 하나의 프로세스에 모든 것이 할당된 현재의 구조, 이 하나만 CPU가 99%를 치고, 정작 중요한 가족, 꿈, 취미, 특기 등등 플랫폼 프로세스에는 1%도 안돌아 가는 프로그램 방식으로는 멀티 코어 프로세서를 쓸 수가 없으니까요.
열심히 살라?, 열정을 가져라?, ... 이미 우리들의 프로세서는 너무나 뜨겁답니다.
뽐뿌가 혹 오셨다면, 지름신을 맞는 기분으로
그럼 여러분의 쿼드 코어를 설계해 보세요. 우리가 폰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일, 가족, 꿈, 취미?,... 가족, 만화, 글, 개발? ... 음악, 일, 사랑, 공부? ...
그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