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침 창을 열면 들어오는 가을의 냄새, 올해도 네 조각 중 한 조각밖에 남지 않았다. IT의 1년은 속세의 7년이라는 말처럼 올해도 수많은 IT 뉴스들은 흘러오고 또 지나갔다.
IT 트렌드를 정리하고 여기에서 인사이트를 수집, 기업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늘 머뭇거린다. 정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해야 하는 행동에 조언을 하는 일은 장기판의 훈수와는 사뭇 다르다.
이 바닥에서 몇 수 앞을 미리 읽고 움직이는 일 따위는 좀처럼 할 수가 없는데, 업계의 장기판 자체가 요동치고 있고, 또 더 나아가 아예 장기의 규칙 자체가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변화의 장기적 흐름, 그러니까 이미 드러난 변화의 속도와 주기를 파악하는 일 정도다. 그리고 용기를 내 발을 내딛는 것뿐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일은 없다’는 옛말, 이 격변의 공간에서도 일리가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종의 진자 운동이 한 방향의 진보를 또 다른 압력에 의해 선회시키니, 익숙한 풍경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IT의 이야기로 풀어 보자면, 코드가 메인프레임이라는 서버에서 돌다가, PC라는 클라이언트로 내려가다가, 다시 웹이라는 서버에서 돌다가, 다시 앱이라는 클라이언트로 돌다가, 다시 클라우드라는 서버로 돌아오는 주기적 진자 운동을 반복하는 식이다. 데이터베이스도 전산기 시절 파일로 계층별로 정리하다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로 과하게 꼼꼼히 정리하려다가, 이제 다시 NoSQL이라 하여 다시 주욱 풀어 버리는 진자 운동이 진행 중이다.
이 파동이 어떤 단계에 있고 어떤 반대급부가 기다리고 있는지만 알아도 적절한 예측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늘 문제는 그래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한 것이다.
조금 더 주기를 길게 보면 또 다른 시각이 보인다. 제프리 무어가 일전에 언급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IT는 그 발전 과정에 있어 장부 시스템(System of Record)에 치중했다. 근래에 사교(社交) 시스템(System of Engagement)으로 그 역할의 무게 중심이 옮기고 있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일이다. 또 하나의 진자 운동이다.
물론 ‘기록’과 ‘참여’는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요즈음 뜨는 시스템들은 이 둘의 조화에서 탄생했다. 진자 운동은 어느 한 극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오가며 새로운 곡선을 그린다. 혁신 시스템(System of Innovation)으로서의 역할이 크다는 논조도 결국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반-합‘인 셈이다.
어떤 큰 진자가 그 방향을 바로 ‘사교’, 즉 사람을 향한 방향으로 돌리고 있음이 보일 뿐이다. 사교 시스템이라고 내가 번역한 System of Engagement란, CE(Customer Engagment)라는 마케팅 용어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인게이지먼트’다. 고객 관리라느니 고객 연계라느니 고객 참여라느니 적절한 번역이 없어서 제각각 표기되고 있으나, 오히려 흔해서 예스러워 보이는 ‘사교’라는 말이 어울린다. 소셜이라는 풍조가 결국 이끌어 가고 있는 세상도, ‘사교’가 풍성한 환경이니 말이다.
이렇듯 IT는 기계의 엄밀함보다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추구하기로 한 것이다. 시야를 넓혀 보면 또 무언가 보인다. 그것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거대한 진자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매진하는 것만 같은 IT 신천지를 우리는 살고 있지만, 오프라인의 소중함이 다시 진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인간은 아직 오프라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규모에 비하면 비할 바가 못 된다. 최근 O2O(Online 2 Offline)라던가 옴니채널(Omni Channel)이라던가 온오프라인 융합의 트렌드가 형성되는 배경도, 결국은 오프라인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혁신을 오프라인으로 다시 데려 오는 과정, 온라인에 몰려 간 이들을 오프라인으로 보내 드리는 과정이 지금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진자에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2015년에도 여전히 사람을 향해, 오프라인을 향해 IT는 움직일 것이라는 점뿐이다.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무언가 시작해보기에 좋은 시절이 돌아 올 것만 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오프라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너무 낙관적인가? 장기적 시점은, 멀리 보는 일은, 사람을 대개 낙관적으로 만든다. 멀리 봐야 전진할 용기가 생긴다. 인간 특유의 서바이벌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