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라는 울타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동안은 넓은 광야로 보인다. 그 팽창하는 지평선을 향해 모두가 신나게 달려나갈 수 있다. 고도성장기의 한국이 그랬고, 지금 그 차례를 맞이 한 개발도상국들이 그렇다. 넘어지고 까지고 그래도 마냥 즐겁다. 함께 성장하는 일이란, 광야를 내달리는 일이란 그렇게 어딘가 뜨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이란 언젠가는 멈추는 것이다.
제조업 위주, 정부 주도의 국가의 성장도 언젠가는 멈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성장이 멈춘 원숭이산에서 피끓는 청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스펙과 학벌로 서로를 비교하며, 자기계발로 자신을 학대하며, 모두가 성장하던 시절의 쌍두 마차,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을 타고 내달리는 날을 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GDP의 35%를 삼성과 현대가 차지하고 있는 나라. 2차산업 위주의 국가 성장의 한계 상황을 우리는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고용흡수율도 세부담율도 결코 35%는 되지 못할 것임을 모두가 느끼고는 있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2차산업'도 '정규직'도 이제 닫히고 있는 광야에 지는 석양과도 같은 것이다.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지난 MB정권이 그 시절로 돌아 가고 싶은 국민적 환각에 편승해 당선되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3차산업'과 '비정규'라는 조합, 이 원숭이산의 질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길.
예술이란 스타트업이란 자영업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미래의 직업들도 결국 이 비정규의 서비스업이다. '알바'라 야유받는 비정규 3차산업이 어쩌면 예기치 않게 찾아 온 우리의 미래인 셈이다. 그러한 미래 앞에 선 우리가 대(공)기업 정규직 앞에만 줄서고 서로를 밀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대(공)기업 정규직의 끝자락을 행여 놓칠까 꼭 부여잡고 자리보전 앉아 있는 어른들로서는 말해줄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는 것이다.
피라미드같은 원숭이산 꼭대기에서 어른들은
누구도 일어날 생각 없이
진보도 보수도 모두 함께 앉아
이미 지는 석양을 바라 보고 있다.
좀처럼 비지 않는 그 자리를 오늘도 꿈꾸는 청춘의 원숭이들은
울타리 문이 열려 있는 줄도 모른 채,
아등바등 서로를 밟으며 원숭이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잔혹한 생명이여. 생명의 다큐멘터리는 늘 그렇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