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의 결과 분석은 대개 세대갈등으로 정리되는 듯 합니다.
결국 진보의 2040 세대동맹 기획이 한계상황에 직면한 장·노년층까지 포괄하는 계급동맹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 된다. 이 기획이 실패한다면, 한국 정치는 기존 진입 세대와 신규 진입 세대가 서로 한계상황에 몰린 채로 제로섬 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1차원적이에요. 각 세대의 시대정신이란 것이 늘 그렇게 명쾌하게 구분되지는 않거든요. 그러나 그렇다고 세대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분명히 시대적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확실한 것부터 파고 들어가보면 다른 해법이 보입니다. 그것은 정치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 생물학적인 것인데요. 바로 본능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쥬니어"에 대한 보호본능입니다.
The scans suggest that particular circuits in the brain are activated when a mother distinguishes the smiles and cries of her own baby from those of other infants.
즉, 세대론이란 것은 하나의 세대가 끝나고 다른 세대가 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 그림처럼 이어지면서, 격세(隔世)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자(父子)의 이어짐이 세대론으로 나타난다는 뜻인데요. 은퇴에 내몰린 베이비부머의 자녀가 지금의 삼포세대가 된 그런 형국도 일례라 할 수 있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광의의 386+, 혹은 학력고사 세대가 "진보", 특히나 "보편적 복지"라는 깃발 하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386+의 쥬니어의 후생을 위한 것임이 두드러집니다. 고도성장세대의 선배 베이비부머들의 발자취가 그들의 자녀를 포함, 굉장히 좋은 반면교사가 되었거든요. 따라서 보편적 복지라고는 하나, 실은 "중심계층의 자녀들을 위한 포괄적 복지"가 맞는 말이겠지요? 은퇴 시작해 막막한 베이비부머의 입장에서는 초고가의 대학등록금으로 졸업시킨 자녀가 삼포상태인데 타인의 자녀를 부양하는 세금을 내야 하니, 기분이 약간 이상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위 그림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큰 문제는 저 '넘사벽'입니다. 벽은 5060대 밑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답니다. 다만 누구도 애써 이야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야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 벽너머의 기득권은 현재 모든 정당의 표밭과 연계되어 있고, 또 이 글을 읽을 아마 대다수의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구도가 보이는 이들에게는
이에 대한 논점이 형성되지 않고 은폐된
지난 대선이란 그저 어쩌면
해태타이거즈 vs 롯데자이언츠의 결승전
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