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썬의 자바 기술을 무단 참조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오라클에게 피소돼, 지난달 중순부터 양사 법정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심리전까지 담당판사는 양사간 합의를 종용해왔고 구글이 손을 내밀었지만 오라클이 물리쳤죠.
결국 재판이 열렸어요.
양측이 불러세운 증인 구도도 재미있죠. 여기까진 양측 논리가 팽팽히 맞서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바의 아버지 제임스 고슬링도 한마디 보탰습니다. 오라클에 유리한 증언을 해 줬죠.
이때쯤 오라클은 재판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묘한 개념을 끌어들였습니다. 'API저작권'이란 것이지요. 저기, 이거 원래 자바 '특허'소송이었거든요? 재판부가 고려하기로 한 특허 개수가 줄어들자 오라클이 피해산정규모를 키우려고 수를 쓴 듯합니다. 구글 반응도 재미있죠. "그런 게 어딨냐"가 아니라 "야 우리가 한 짓은 공정이용 범주였어"라니. API저작권이란 게 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입니다.
아, 외출해야 되니까 여기서 중단! 다른분이 이어주셔도 좋습니다~
당초 양사 재판은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는 거였습니다. 우선 저작권 침해여부를 판단하는 첫단계 심리, 그다음 특허 침해 여부를 가리는 둘째단계 심리, 그리고 앞서 내놓은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배상규모를 판정하는 마지막 단계 심리죠. 지난주까지 저작권침해여부를 가리는 첫단계 심리가 절반만 마무리됐고 이번주중 특허침해 판결이 나왔죠. 다음주중 첫단계 심리를 이어 진행할 겁니다.
이즈음 해서 많은 분들이 착각하신 게 있는데, 오라클이 주장한 특허권과 저작권은 그 보호대상이 별갭니다. 우선 오라클이 주장한 자바특허는 자바가상머신(JVM)에 구현된 기술특허를 가리킵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그 구조상 필요한 JVM을 오리지널에서 개조해 만들었습니다. 이 문제는 아파치소프트웨어재단(ASF)과도 관련되는, 자바 스탠다드에디션(SE)을 오픈소스로 구현한 아파치 하모니와도 관련이 있었던 것 같네요. 이 소송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았지만요. 어쨌든 최근 판결에서 구글은 오라클의 특허 2건에 대한 침해혐의가 무효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자바를 놓고 구글과 오라클간 벌어진 법정싸움에서 최근 국내매체 다수가 전한 '구글의 오라클에 대한 승소'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 재판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중간결과를 와전시킨 것이죠. 일부 외신들이 구글 윈 오라클 케이스 어쩌구 하면서 오해할만한 제목을 붙여 혼란을 더하긴 했습니다만 이것도 일종의 제목장사.
1. 무엇이 틀렸나
최근 오라클과 구글 소식을 다룬 대부분의 국내 매체와 일부 해외 매체가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자바 지적재산권(또는 특허)과 관련된 오라클 대 구글 법정싸움에서 구글이 '승소'했다. 양측 재판이 완전히 끝났다. 구글측에 아무런 혐의가 남지 않았다.
이런 3가지 명제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엄밀히 말해 전부 틀렸습니다. 오라클에 패색이 짙은 건 사실이지만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승소나 패소라는 표현을 쓸 수 없으며, 구글측에 완전 무혐의 판단이 내려진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 재판이 어떤식으로 구성됐는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데요. 특히 원고측인 오라클의 주장 내용을 봐야 합니다.
위 슬라이드에서는 어찌보면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오라클은 재판에서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y)을 침해(Infringement)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자바 언어의 API저작권과 자바가상머신(JVM)의 기술특허를 그 내용으로 제시해왔습니다.
다시말하지만 이 재판에서 자바 API 저작권과 JVM 특허에 대한 법리적 판단 과정은 별개로 진행됐습니다. 국내 매체가운데 이를 제대로 구분한 곳은 제가 알기로 거의 없습니다.
2. 실제로는 어땠나
아무튼, 이같은 구분에 따라 구글과 오라클의 재판은 처음부터 3단계(phase)로 준비됐습니다. 1단계에선 자바API 저작권 침해 혐의를 판단할 예정이었습니다. 2단계서는 JVM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었습니다. 3단계는, 1단계와 2단계 판단 내용을 근거로 실제 배상규모를 산정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와 같이 1단계부터 제대로 확정된 결론을 못 내렸습니다.
바쁜 윌리엄 앨섭 판사께서는 저작권 침해 판단 건너뛰고 특허침해 판단으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중간과정인 특허침해 판단 결과는 지금 알려진바와 같이, 구글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재판 경과로 볼 때 오라클의 안드로이드에 빨대 꽂기 계획은 이미 진작에 끝장났죠. 헌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재판 끝이 아니라 중간 단계란 겁니다. 재판이 진행중인데 '구글 승소'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재판이 3단계로 나뉘어 열렸다는 것부터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까지, 외신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일부 제외한 국내 매체 다수는요? 네이버에서 보시는대로입니다.
3. 간추리자면
일단 분명한 '사실'만 요약하면 아래 3개 단락과 같습니다.
1. 원고 오라클이 주장한 자바 API 저작권에 대한 피고 구글측의 침해 혐의가 부분적으로 인정됐다. 구글은 자신들이 사용한 자바 API 저작권 내용과 수준을 저작물의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 성립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012.5.7. 1단계 심리 경과)
2. 원고 오라클이 주장한 자바 특허에 대한 피고 구글측의 침해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라클측의 특허 관련 청구항목을 기각하고 구글이 오라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구글은 오라클에 특허 관련 배상책임이 없다. (2012. 5. 23. 2단계 심리 경과, 특허침해 인정시 배상규모 산정 단계로 설정된 3단계 심리 취소)
3. 재판부는 특허 관련 심리를 구글측 무혐의 판결로 매듭지었다. 1단계 심리 내용가운데 마무리가 안 된 API 저작권 침해 관련 판단을 29일(현지시각) 이후 내리기 위한 나머지 심리를 속개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 배상규모 산정을 위한 3단계 심리와는 다른 절차다. API 저작권 침해 여부는 배상규모 산정 단계에서 다루지 않을 예정이었기 때문. 재판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상황이 구글측에 굉장히 유리하긴 하지만. (2012. 5. 24.)
사실 나머지 구글의 자바API 저작권 침해혐의를 공정이용으로 볼거냐 말거냐는, 배상규모 산정시 고려치 않기로 담당판사에 의해 재판 초반에 예고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분위기상 더 이상 심리 진행 내용이 알려져봤자, 두 회사가 마주한 국면에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4. 이 구분 왜 중요한가
그래도 말은 똑바로 해야죠. 일단은 오라클이 졌지만 소송이 안 끝났다고요. 자바API 저작권에 대한 판단이 남았다고요. 게다가 이 자바API저작권이란 개념이 어떻게 다뤄지느냐에 따라 기존 소프트웨어 업계에 엄청난 파급을 몰고 올 수 있을 텐데요.
온갖 업체들의 발치에 채이는 특허소송 결과보다 자바API 저작권 판단 결과가 기술적 산업적 의미는 더 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니었나보네요.
At the same time, though, "I would not pop the champagne corks just yet, since there is still the issue of whether APIs can be copyrighted," O'Brien cautioned. "If Oracle can successfully assert copyright on them, that could disrupt the entire tech industry," he pointed out. "So I am still holding my breath
여기까지, 자바API저작권과 자바 가상머신 기술특허를 구분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침해여부를 따로 다뤘던 1단계 심리와 2단계 심리 내용을 혼동하고, 3단계 심리는 취소됐지만 저작권관련 판단이 남아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승소'라는 표현을 쓴 뉴스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얘기한 제 지적이 잘 이해가 되셨길 바랍니다.
5. 네이버 뉴스 꼬집기
달리 말해 각사 불완전한 보도 내용 디비기.
구글이 주장한 공정이용은 자바API 저작권 침해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끌어들인 개념입니다. 특허에 대해 주장한 게 아니었죠. 구글은 특허침해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위 기사에도 구글이 특허침해혐의를 부인했다고 주장하고는 있죠. 그나저나 여기서도 특허침해와 저작권침해를 혼동했네요. 앞에서 다 설명했듯이, 의견 합치를 이루지 못했던 건 1단계 심리에서 다룬 API저작권의 공정이용 여부입니다. 특허는 순전히 2단계 심리에서만 다뤘습니다.
이건 오보라기 보단 그냥 안 알아보고 베껴 쓴 겁니다. 오라클이 당초 권리를 주장한 특허는 더 많았고, 효력을 잃거나 판사가 청구항목에서 기각하고 남은 게 2건뿐이죠.
구글이 오라클과의 자바(Java) 특허 침채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미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23일(현지시간) 오라클이 제기한 2건의 특허 침해 건과 관련해 구글이 어떤 지적재산권도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배심원단 10명은 만장일치로 구글의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오라클이 요구한 10억 달러의 배상금과 관련된 논의하기로 했던 3차 공판은 취소됐다.
앞서 2심에서 배심원단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오라클의 지적재산권을 일부 침해했다"고 평결을 내렸다. 하지만 구글이 지적재산권을 불공정하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이 기사는 인용된 문장가운데 맞는게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일단 '승소'가 아니란 건 이미 설명했지요. 그리고 구글이 어떤 지적재산권도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린 게 아닙니다. 어떤 특허도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리긴 했죠. 지적재산권에는 특허와 저작권이 함께 포함되지 않습니까? 저작권 판단은 미뤄졌죠. 역시 API저작권과 자바기술특허 개념을 혼동했기 때문에 오류가 생겼네요. 마지막 인용단락인 앞서~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 1단계 심리가 API저작권 침해여부 판단이었고 2단계 심리가 전혀 별개인 특허 침해여부 판단이었단 걸 안 알아본 결과입니다.
여기서도 API 저작권 침해여부 판단과 특허침해여부 판단이 별개로 진행됐다는 점을 모르고 썼네요. 특허침해여부 판단이 어떻게 API저작권 침해여부 판단을 뒤집겠습니까.
특허침해여부와 API저작권침해여부 판단을 구분해낸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아쉽게도 재판 구성에 대한 착오로 1단계, 2단계 심리를 1차공판에서 전부 진행했고 3단계 심리가 2차공판인 것처럼 썼지만요.
여기서는 1단계, 2단계 과정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지만 API저작권 침해 판단과 특허 침해 판단을 혼동한 오류는 동일합니다.
넵 의견 감사합니다 :)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이 소송에서 구글이 막대한 배상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만, 심정적으로는 오라클의 행위에 동정이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전 개발자가 아니라 API 실체를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긴 어려운 입장입니다. (사실 현업 개발자 분들께 질문을 던져봤는데 오라클처럼 API를 '독점적'인 것처럼 주장하긴 무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렇다고 아무나 막 베껴다 쓰게 하는게 정당한 일은 아니라고도.) 다만 어떤 API 체계가 보이는 속성 가운데, 개발자들이 어떤 언어를 잘 다루고 효율적인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된 구조'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를 사실이라 인정한다면 그런 구조를 짜낸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라클이 API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선 모습은 꼴사납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구글이 '공정이용' 말고 달리 반박할 거리를 만들어놓지 못한 것도 문제 없다고 넘어가주긴 어려워 보인다는 거죠.
비등한 예가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애플이 iOS용 앱개발을 위한 환경으로 최상위계층에 코코아터치는 오브젝티브C를 쓰고 UIKitframework라는 UI용 프레임워크를 포함하는 걸로 아는데요. 그 API 체계를 MS가 윈도8 메트로UI 앱플랫폼에 싹 베껴와서, iOS앱개발자들이 간편하게 윈도8 앱을 만들수있게 유도했다고 하면, IP관련 분쟁여지가 없더라도, 전략적으로 영리한 선택이라 해도 애플과 그 커뮤니티 입장에선 MS를 욕하는 게 당연하지않을까 싶은데요. MS가 메트로UI 앱플랫폼을 강조하고 있는 윈도8은 데스크톱을 넘어서 애플 아이패드가 호령하는 태블릿 공략을 목표로 내건 OS잖습니까. 물론 MS는 애플 못잖게 충성도높은 자체 개발자 풀을 갖춰온 기업이라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겠지만요. 예시일 뿐임다 ^^;
실제로 구글은 당시 벤처업체였던 안드로이드를 인수해 자바VM과 호환성이 없는 달빅VM을 확보함으로써, 이전까지 마땅한 노력을 들이지 않았으면서 자바 개발자 풀에 숟가락을 댈 수 있게 됩니다. 오라클은 구글도 이같은 가능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래 인용 기사의 5번째, 6번째 이미지 캡션이 그런 방증이죠.
오라클에게 중요한 건 베꼈다는것 그 자체가 아니라, 코드를 베낀 플랫폼이 오리지널 자바VM과 호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VM이 자바와 호환됐다면 기존 썬의 사업모델에 들었던 휴대폰용 플랫폼 자바ME와 직접적인 라이선스를 (오라클이든 썬이든) 주장할 수 있었을텐데, 왠지 구글이 이를 회피할 의도가 있었잖나 싶은 혐의죠.
소송 초기 구글은 달빅VM이 오라클의 자바기술을 도용했다는 주장에 반박하면서 당시 자바SE와 호환되는 아파치 오픈소스 자바 프로젝트 '하모니'를 썼다고 밝혔는데요. 이건 처음부터 그랬단게 아니라 썬 자바SE를 쓰다가 문제소지를 알아차리고 나서 코드베이스를 바꿔갔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라클이 위 91장짜리 슬라이드에서 폭로한 메일 교환 정황을 보면요.
한편 안드로이드와 썬의 IPR 관련 분쟁소지에 대한 관측은 2007년부터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해당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다음 KLDP 권순선님 글과 이어지는 코멘트들을 시간순으로 쭉 읽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대로, API 저작권 주장을 전부 수용해버리면 일이 더 커질 여지가 충분합니다. 플랫폼과 언어 독점성을 주장하느라 난리가 날 테지요. 그런데 통상적으로는 API 저작권을 주장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특정 언어를 지원하는 컴파일러가 어떤 플랫폼에 돌아가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기만 하면, 그 플랫폼 벤더는 API가 어떻게 변조되든 그 언어를 다루는 개발자가 많아질수록 컴파일러 덕에 플랫폼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구글의 행위는 동일한 언어를 지원하는 컴파일러가 있다더라도 어떤 플랫폼(오리지널 자바VM)에선 안 돌아가는 결과물을 내놓게 만든 것이죠. 이 경우 그 언어를 다루는 개발자가 많아지는 것과,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 게 전혀 별개의 얘기가 돼버립니다. 안드로이드가 잘 나갈수록 오라클에게는 손해가 된다는 진술이 제게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이미 지난주 '구글 승소'니 '오라클 패소'니 하던 미디어들은 제목 쓰기 애매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아예 특허 판결과 저작권 판결을 별개 소송인 것처럼 써버렸습니다.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