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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12 posted (3/26 '12 edited)

산업시대 재벌 의존적 복지와 비정규직 철폐라는 환상

『 "당에서 발표한 대로 2015년까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반드시 전환토록 할 것"이라며 "대기업의 경우도 고용형태를 전부 공시해서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강조했다. 』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쏘아버린 화살은 과녁을 맞추기 전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비정규직 철폐까지 쉼없이 나아가는 ‘희망의 뚜벅이’가 되자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희망 뚜벅이는 이날 행사를 일컫는 다른 말이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안효상 사회당 대표도 출정식에 참가했다. 』

우리가 비정규직 철폐를 RT하기 전에 잠깐 되돌아 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고도성장기가 가능하게 한 산업 시대적 고용문화, 재벌 의존적 복지사회'에 살고 있습니다만, 이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산업시대 재벌의존적 복지'란 어떤 것일까요? 복지란 기본적으로 인간 사회를 야만의 정글로 만들지 않는 최소조건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후 한국에서는, 이 야만의 정글을 막는 일을 일차적으로는 가족이, 그리고 흥미롭게도 대기업이 이어받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이 대기업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줍니다. 성장세의 대기업은 그 대가로 젊은이들을 "가족"으로 받아 들여 이들에게 최대치의 급여와 복리후생을 약속합니다. 이 평생 고용의 기대감을 갖게 된 청춘들은 대신 1) 처자식과 2) 부모를 봉양할 사회적 책무를 지게 되고, 이 것이 새마을운동에서 정점을 찍고 80년대까지 이어져 온 '산업시대식 재벌의존적 복지'였습니다. 일종의 암묵적 사회계약입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만약 가족의 보호막이 약한 경우, 즉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난 경우는 야만의 정글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대기업에 들어 가지 못하면 또 다시 야만의 정글을 맛보게 됩니다. 그렇게 이 회로는 한국 사회 특유의 독특한 가치관을 형성해 버리게 됩니다. 이 두 보호막이 무너지게 되면 야만의 정글로 돌아 갈지 모른다는 원초적 절박감이 주입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대기업이 이어 받아주기 직전까지 아이들을 보호할 책무를 떠안게 되고, 이 부담에 익숙하지 못한 부모들은 과도한 관심과 사교육으로 아이들을 사육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교육, 가족의 보금자리(=부동산)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광적으로 공기업/대기업 등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없고, 또 모두가 재벌 기업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이 현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자, 바로 이 지점이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놓이는 곳입니다. 

"비정규직이 없는 사회"는 일견 이 숙제의 답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백수, 알바인생, 영세 자영업, 주부… 우리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우리 곁의 생래적 비정규직들입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사회라는 공허한 구호가 외치고 있는 것은 결국 "산업시대 재벌 의존적 복지의 연장"하자는 것 뿐입니다. 이미 그 체제에 들어간 기득권, 즉 표밭의 환심을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이들은 아예 논의에서 배제가 됩니다. 원래 사회나 국가 등 공동체가 해야 할, 야만의 정글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플랫폼적 프로세스'를 가족과 대기업이라는 '특정 모듈/앱'에 방치한 지난 고도성장기의 사정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는 셈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란, 가족이 힘들어도,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해도, 야만의 정글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개인이 가질 수 있도록, 사회와 국가와, 이조차 여의치 않다면 공동체가 애써주는 그런 사회일 것입니다. 
『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일제히 비정규직 대책 마련과 함께 대기업의 고용 분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제는 대기업이 노동시장에서도 덩치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론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
아니요, 오히려 이제 그 책임과 권리를 대기업으로부터 분리해 다시 우리에게 가져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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