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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14 posted

[김국현의 논점] 시간을 파는 사람들


우리는 대개 시간을 팔아 살아 간다. 
시급에 맨먼스에 노임단가에
삶의 가장 소중한 자원, 시간은 그렇게 팔려 나간다.
이를 피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다. 
예컨대 여러분이 자본가라면 피할 수 있다. 타인의 시간을 사면 되니 말이다. 잔혹한 자본주의의 끊을 수 없는 참맛이다.
자본가가 아니라도 방법은 있다.
여러분의 '상품'을 팔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다. 앱을 팔고 책을 팔고 하다못해 유튜브를 팔면 여러분은 얼마간 쉴 수 있다. 
상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라는 상품'을 팔수도 있다.
직장인도 정규직이라면 이런 것이다. '인재'라며 연봉으로 선매하는 것이다. 되기가 어렵지 일단 되면 편해진다. 구조상 갑이든 을이든 타인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시간을 파는 이들은 비정규직, 알바, 외주 등 다양하게 불린다.

이쯤 읽다 보면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라면 
상품화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세기는 포드에서 빌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상품화를 통한 성공'을 증명해 준 시기였다. 
팔 것이 없다면 자신을 판다. 상품에 붙어야 할 '스펙'이라는 단어가 인간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사회라면 더 본능적으로 이를 느끼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들 정규직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본주의 일반을 이야기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으로 팔려 가는 사람들은 양극단에 있다. 한쪽에는 시급 비정규직이 있고 또 한 쪽에는 변호사나 컨설턴트 등 소위 Billable Hour로 청구하는 이들이 있다. 시급으로 치자면 못잡아도 100배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난다. 
최하층의 전자가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는 '즉시 수급과 대체가 가능한' 재화이기에 그렇다. 모든 것이 매뉴얼화가 되어 있어 즉시 따라하기만 하면 되므로 재화 자체의 차별점은 0으로 수렴되고, 유일한 차이는 투여하는 시간뿐이다. 여기서의 경쟁은 단가뿐이고 이는 허용 한계까지 하락한다. 최저 시급으로 규제를 해보지만 계산에 맞지 않다면 오히려 고용을 하지 않을 뿐이다. 
최상층의 후자가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는 발주자가 그 상품을 평가할 수 없다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이 케이스가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날지 감이 없는 상황이기에 시간으로 청구하고, 갑은 을에 끌려다니기 쉽다. 시간을 끌 수록 돈을 벌게 되는 Billable hour의 불합리성은 이미 수십년간 논의 되고 있지만, 고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발주자가 무엇을 사고 있는지 어느 정도 모호해야 이 비즈니스는 짭짤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힘조절'할 수도 있고, 어차피 고생하는 것은 투입된 직원들 뿐이므로 파트너의 몫도 땡길 수 있다. '어떤 건에 얼마'가 되는 순간, 시장의 가격 비교는 발생한다. 
현재와 같이 왜 비싼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비싼 이들로 포지셔닝할 수 있다면 이 메카니즘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문제는 이 양극단의 사이에 있다.
이도 저도 아니지만 무조건 시간으로 사고 팔려는 일이 빈발하는 것. 대표적인 것이 맨먼스 도매가로 팔려 가는 IT 하도급 프로젝트들. Billable Hour처럼 고객에게 고자세로 청구할 수도 없고, 시급 알바처럼 당장 아무나 와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품화가 이루어져 어떤 일을 끝내면 얼마인 것도 아니다. 애초에 상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개인이라는 상품의 '스펙'은 무의미하고 시간당 노임단가가 나타난 엑셀표면 OK다.


사는 사람도 무엇을 만들어 오면 얼마를 주겠다고 그 상품을 말할 수도 충분히 있었지만,
귀찮아서인지 뭐가 뭔지 몰라서인지,
여하튼 시간으로 사람을 산다. 
와서 한 번 만들어 보라는 것. 
발주자는 자신이 무엇을 애초에 원했었는지 완성품을 보고 깨닫는다. 
"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하도급의 시간 판매는 늦어지면 추가 시간이 청구되는 것이 아니라 지체보상금만 청구 된다.
시간을 팔았지만 어느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을 파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기계에 의해 대체 될 수 있을 정도로 매뉴얼화된 일, 아니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충분히 강해 그 상품성을 은닉하고 싶은 일부의 업태에서나 어울리지만, 이런 이야기 좀처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품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상품으로 발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지금 자신이 시장이 원하는 상품이라 포지셔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자신이 상품으로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결국 모두 시간을 사고 판다.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었던 노동을 단순화하여 개선의 동기를 하락시키고, 자신이 무엇을 사고 팔고 있는지 자신들도 모르게 되는 양극단의 단점만 흡수한 채, 사회 전체의 생산성만 하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자신이 상품이라 굳게 믿으며 입도선매의 꿈을 꾸고 스펙을 쌓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런 상품은 필요하지 않은데요 ㅎㅎㅎ", 라고 말하는 듯한 어른들의 표정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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