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hyun 4/8 '13 posted
보편적 복지 국가. 
지난 수년의 한국 정치에서 '복지'만큼 뜨거운 키워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이상향을 실현하는 일이란, 모두가 부자가 되는 세상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각자 달려 온 이들에게,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말, 낯설기 때문이다. 
중산층, 혹은 중산층이라 믿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에게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향은 부담일 뿐이다. 
결국은...
'중간계급을 배제하고 노동자계급과 빈곤층에 더 많은 것을 재분배하려는 노조, 또는 사민주의 정당의 급진주의적 분파들의 야망(baldwin 1990)'
그러니까 복지라는 이상향을 부르짖던 이들 덕에, 정작 복지의 당사자가 되어야 할 이들은 그 논의로부터 소외되고 정치세력화되지 못한 셈이다. 
한국은 특히나 북유럽 복지의 거국적 교섭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이미 노동운동은 대기업 정규직 귀족 노조와 이를 표밭으로 삼는 구시대적 정파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사실상 정규직 노조가 인사부 이중대가 된다거나 노사의 중재자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운동을 돕는 일이 이 책에서 사례로 소개될 정도로 기적 같은 일이 되었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고용안전판'이라 여기는 계급화가 이미 고착중이다.

이 책의 저자들 중 일부는 아직도 신자유주의 탓을 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해 봐야 중간계급을 배제할 뿐이다. 이 책의 다른 저자들이 말하듯 근본적 문제는 '노동양극화' 더 나아가서는 계급화에 있다.  
계급의 고착이란 곧 유연성이 없다는 뜻이 된다. 일단 한 번 정규직이 되면 정년까지 데리고 가야 하고, 북유럽처럼 완전 유연화를 하는 것도 독일처럼 내적 유연화를 할 수도 없다면, 결국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신규채용을 비정규화하는 것 뿐이다.  


내게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계급화가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서다. 책의 저자는 그 원인으로 한국의 뿌리 깊은 신분제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의 혁명은 대부분 易姓革命, 그러니까 왕조가 바뀌는 것 뿐이었고, 그 질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는 2013년의 양반전의 논지와 비슷하다. 


북유럽 복지의 근간이 된 스웨덴의 rehn-meidner 모델의 핵심은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연대임금정책에 있다. 즉 정규직이든 아니든 심지어 중소 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그 임금의 수준이 비슷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낙후 부문은 인건비가 부담되고 경영 합리화의 압박을 받게 되며 고통스럽겠지만 자연스럽게 성장 산업으로 사회가 이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낙오된 이들은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ALMP)'으로 "국가가" 구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한 철학은 바로 '연대'에 있지만, 계급이 상존하고 있는 공간에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연대다. 
'연대란 타인의 빚을 함께 갚아 나갈 형재애'라 이 책은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타인이 속한 계급의 존재에 의해 나의 안녕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이는 너무나 힘든 일인 것이다. 

 증세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정부가 많은 책임을 가져가야 한다는 이중적 태도.
게다가 이처럼 나랏님에 대한 뿌리 깊은 과잉 의존도 한 몫하고 있다. 

직업의 미래를 달리며 이미 매우 유연해진 IT업계는 가장 산별노조가 필요한 곳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지(?)가 좋은 회사"를 알아 보는데 전념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시민과 노동의 친복지 연대임을 소개하는 책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민중의 집, 전국금속노동조합 등 다양한 노동 현장과 영역에서 노동과 시민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그 속에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점, 그리고 올바른 복지 체제를 갖추기 위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계층,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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