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honey's image jonghoney 17
8/14 '12 posted (1/18 '13 edited)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스티브 와인버그(著)
생각비행 (2010.11)





 미국의 전설적인 여기자이자, 현대적인 '탐사보도'의 창시자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Aida M.Tarbell)이 록펠러가 세운 석유트러스트 스탠더드 오일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보여주는 책


P.40
타벨이 드레이크 유정을 발견한 가선을 보도한 내용을 보면 낭만적인 어조를 띠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인의 진취성과 비상한 수완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한 산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경한 문제에 기존의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기계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장치와 공정을 체계화하면서 시행착오를 감당하는 인내심과 상상력을 발휘했다."

P.123
(1870년대) 석유산업이 점차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한 독립 석유업자들로서는 트러스트라는 사업방식이 목을 조르는 불공평한 처사였다. 훗날 타벨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이였다. 이들의 인생은 혈기왕성하고 빠르고 즐겁게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노력을 쏟아 붓고 자원을 개발한 결과 권력의 맛을 본 젊은이들은 열정을 다해 전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사업가들은 록펠러와 스탠더드 오일의 대단한 존재감을 느꼈다. 타벨은 특유의 폭로성 산문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큰 손 하나가 나타나 그들의 땅을 약탈하고 목을 졸랐다. 갑작스럽고 음흉하게 사업이 공격받자 그들의 느긋함과 공평심은 동요했다."

P.160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의 지배력을 꾸준히 증가시키고 하나님이 주시는 합당한 보상인 부를 계속 축적하려 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법이 없었던 록펠러는 청지기적 태도로 침례교 교의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아내를 사랑하는 일과 4명의 자녀에게 종교적인 헌신과 근면함을 가르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P.190
록펠러와 마찬가지로 타벨은 감상주의적인 선택을 지양하고 구체적인 증거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렸다. 록펠러는 직원들에게 거래 원장을 세밀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자료를 종합하고 신중히 분석한 다음 사업적 결정을 내렸다. 타벨 또한 이와 비슷한 접근 방식을 보였다. ㅏ벨은 정부 부처나 기업의 서류를 조사하고 인터뷰한 다음 기사를 작성함으로써 글에 힘을 부여했다. 타벨과 록펠러 두 사람은 평생토록 자신의 직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사실과 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예측을 중시하는 산업혁명 이후의 풍조와도 닿아있었다.

P.192
"암석과 식물에 몰두했던 지난날의 관심이 방향을 틀어 인간에게로 옮겨갔을 뿐이다. 나는 남성과 여성을 이해하는 일에 동일한 열정을품고, 인간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에 온 힘을 기울였다."
타벨이 남자와 여자를 이해한다고 한 말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기록하고, 그렇게 축적된 성공과 실패가 어떤 방식으로 미국 사회를 규정짓는지 세밀하게 기록한다는 의미였다.

P.193
(타벨은 <셔토퀀>에서 일하면서 1887년 4월호에 언론직 종사 여성을 다룬 기사를 썼다)
타벨은 언론인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경험 이상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언론인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매우 폭넓고 때로는 깊이 있다 보니 타벨은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박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의 내용은 100% 정확해야 하며, 바로 이것이 기사의 신뢰성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P.230
타벨이 남긴 기록처럼 "석유시장에서 록펠러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탠더드 오일이 생산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 독립 사업자로서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록펠러의 전설은 날로 커졌다.
"록펠러가 무지바히고 집요하게 가격을 계속해서 낮추자 독립 사업자들은 절망하고 말았다."

P.282
(타벨이 매클루어 매거진에서 연재한 나폴레옹 이야기 관련)
타벨은 자신의 견해를 독자들과 나누면서 사실 정보만 나열하는 전통에 맞섰다. 타벨은 사람이란 복잡한 존재라서 전적으로 선하거나 전적으로 악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P.288
타벨의 경력에서 이 시기는 전기를 쓰는 나름의 철학을 발전시킨 시간이었다. 나중에 대학 강의를 위해서 만든 교재에서 타벨은 이렇게 설명했다.
"전기작가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라. 그러면 모든 게 신선하고 새로워진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신선한 자료를 집어넣어야 한다. 모든걸 새롭게 바라보라. 진정으로 다룰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그의 친구가 될 수 있다. 그가 무엇을 했건 혹은 하지 않았건,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P.303
타벨은 링컨 사후에 대단했던 추모 열기를 언급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다.
"링컨의 죽음으로 온 땅을 휩쓸던 감정이 낳은 처음이자 피할 수 없는 결과는 링컨을 순교자와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링컨을 경멸하고 조소하고 의심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예전에 링컨을 비난하던 이들은 뒤늦게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타벨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끔찍하고 갑작스러운 재앙이 가져다준 통찰력으로 말미암아 링컨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단순하고 고결한 삶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래전 링컨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노예제도의 확대를 막고 연방을 구하는 과업을 수행한 링컨을 편파적이고 사적인 생각과 비본질적인 일 속에 가둬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로운 관점으로 이번에는 링컨을 "하나님이 특별한 일을 하라고 일으켜 세운 사람...예언자"라고 부르며 지나치게 찬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타벨은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링컨은 단순하고 끈기 있고 단호하며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링컨이 품은 최고의 야심은 인생에서 직면하는 질문에 대해서 진리의 대답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느낀 최고의 만족은 발견한 진리를 온전히 따르는 삶이었다."

P.341
전국 법원에서 법정 소송이 일어나 저널리스트들이 과거에는 전혀 활용하지 않았던 문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안을 뒷받침하는 문서와 소송당사자가 제출한 법정 서류를 볼 수 있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기자는 그런 자료를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타벨이 스탠더드 오일을 조사하면서 시도한 방법은 정보원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을 문서 작업으로 대체하는 획기적인 접근법이었다. 

P.355
타벨은 막무가내로 어떤 트러스트든 금지하자는 입장이 아니었으며, 합법적이고 윤리적으로 얻은 독점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타벨이 스탠더드 오일과 록펠러를 문제 삼은 이유는 불공정한 경쟁 때문이었다. 특히 철도 리베이트 협약은 현대 탐사보도 용어로 '명백한 증거smoking gun'에 해당했다. 록펠러는 철도 리베이트 협약을 고집하면서 누구든지 그렇게 했으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타벨은 그 말이 얼마나 불합리한 변명인지를 논증했다.
"모두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그렇게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 일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철도 이용의 특혜를 갈취하는 강자만이 할 수 있었다. 철도회사는 비밀 협약을 맺은 록펠러 말고 다른 누구에게도 그런 특혜를 주지 않았다."

P.358
록펠러는 수십 년간 타벨의 폭로로 말미암은 불편한 심기를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표출했다. 지인이었던 히람 브라운Hiram Brown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와는 모든 게 달라졌어. 지금은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세상에 날뛰고 있지. 어떤 사업에서 누가 성공했다고 하면 그놈들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까." 나중에 록펠러가 이런 이야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 글러먹은 여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니까!" 록펠러는 때로 타벨을 "타르 배럴 양 Miss Tar Barrel"이라고 불렀다.

매클루어가 쓴 <매클루어 매거진> 1903년 1월호 서문

P.372
타벨은 <매클루어 매거진> 독자를 향해 이렇게 썼다.
"이렇게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어둠 속에 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대중은 록펠러가 어떤 사람인지 알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엄숙한 의무를 이행하는 일 외에 삶을 향상할 더 나은 방법이 있겠는가?"

P.375
타벨은 록펠러가 가치 있는 곳에 기부한 돈마저 부패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타벨은 록펠러가 부정한 방법으로 끌어모은 돈을 불쌍한 사람을 돕는 자선단체에 조금씩 나눠주는 대신에 공정하게 사업해서 돈을 벌었다면 사회에 더 크게 공헌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록펠러가 고백하는 종교의 원리는 록펠러가 수행하는 사업의 원리와는 상극이다. 그런데 세상은 록펠러의 커다란 영향력 아래에 있다. 록펠러의 방식을 따라 한다면 결국 그의 위선과 냉소마저 닮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단언했다.
"록펠러의 위선 때문에 교회와 많은 사람까지도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그들이 엄청난 기부금을 주는 록펠러에게 비굴하게 굽신거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타벨은 사회의 퇴보를 걱정했다.
"록펠러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삶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훨씬 더 열악해지고 피폐해졌다....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 상거래하는 사람들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법을 어기고, 국회의원에게 뇌물을 주고, 경쟁자에게 사기를 친다."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폭로 특집의 결과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록펠러의 상업적 마키아벨리즘"이 일소되기를 기대했다. 타벨은 때로 낙관적이었다.
"세계는 시대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인물을 파악하고 분석할 만큼 발전했다. 역사란 여웅와 용사, 왕, 철학자를 분석한 내용과 그들이 남긴 기록, 그들이 전성기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한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일 뿐이다."

P.382
이처럼 스탠더드 오일에서 많은 사람을 써서 홍보를 시행했어도 타벨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론 처노가 말했듯이, 록펠러는 공식적으로 타벨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록펠러가 타벨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수많은 다른 진실을 먼저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보이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던 것이다."
또다른 록펠러 전기작가인 아벨은 이렇게 썼다. "록펠러가 책으로 정복당했다는 사실은 무척 역설적이다. 그는 고등교육을 권장하고 후원하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펜이 전능한 돈보다도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록펠러는 아마도 굉장히 놀랐을 것이다."

P.399
20세기 초 미국에는 벌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연방 기관이 없었다. 법 제도도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탓에 기업이 법을 위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록펠러와 같은 기업 중역들을 징버할 수 없었다. 회사 본사와 법원 사이에 벌어지는 재판과 무관하게 트러스트는 풍부한 자본을 이용해 전략을 구사했다. 정치 운동에 기부금을 냈고, 트러스트에서 급여를 제공하는 정치인들을 요직에 앉혔으며, 일시적으로 제품의 가격을 낮춰서 소비자의 원성이 잦아들게 했다. 그리고 반트러스트 조치를 취하려는 위협이 없어지지 않을 때 회사를 닫는다고 협박하거나 고용 인원을 감축하기도 했다.

P.408
존 마셜 할란 대법관은 판결이 난 지 다섯 달 뒤에 죽었다...1890년대 초에 할란은 동료 대법관들에게 시민이 "인종이나 식민지와 상관없는 형태의 노예제도에 연루된 불안을 깊이 경험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힐란은 이러한 종류의 노예제도를 "생활필수품의 제작과 판매를 비롯해 미국의 모든 산업이 몇몇 사람과 몇몇 기업의 독점적인 이익과 이득을 챙겨주고 자본을 축적하게 만드는 노예제도"라고 명명했다. 이로써 광범위한 반트르서트 법안이 등장하게 되었다.

P.409
판결 전 가장 큰 회사였던 뉴저지의 스탠더드 오일은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엑손Exxon이라는 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뉴욕의 스탠더드 오일은 모빌Mobil로, 오하이오의 스탠더드 오일은 소하이오Sohio로 회사명을 변경했고, 나머지 회사들도 이름만 바꾸었다. 각 자회사들의 경영권은 해체되었지만, 서로 자리 잡은 시장을 지키고 다른 회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직접적인 경쟁을 피했다.

P.416
타벨이 스탠더드 오일을 폭로하는 특집기사를 연재하는 동안에 <오마하 월드 헤럴드 Omaha World-Herald> 편집자가 타벨에게 연락해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록펠러의 기부금을 받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의했다. <오마하 월드 헤럴드>에 타벨의 답변이 실렸다.
"록펠러가 주는 기부금을 받는 행위는 미국에서 다른 누구보다 크게 성공하기까지 그가 이용한 상업 원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그 누구도 그러한 원리의 잘못된 영향에 대해서 입을 열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고 본다."
타벨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본성 때문에 "선물을 받는 사람은 조만간 기부자를 옹호하고, 기부자의 방식까지도 옹호하게 된다. 그러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네브래스카 대학은 도덕적 기상을 위해서 반드시 기부금을 거절해야 한다."

P.428
항상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하는 타벨은 1차 세계대전 초기에 미국 전역에서 독특한 마을의 특성이 사라지게 되리라고 전망했다. 맥도널드와 월마트가 어디에나 자리잡은 시대는 한참 나중에야 도래하지만 타벨의 선견지명은 탁월하고 정확했다. 타벨은 시내의 매력적인 호텔이 판에 박인 진부한 모텔에 밀려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뉴욕 시 양품점을 모방한 옷가게들이 대로변에 즐비하게 들어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타벨은 소비자들이 대서양 연안의 잡지 광고에 나온 헤어스타일을 요구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미용실이 표준화되는 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타벨은 그러한 상업적 표준화가 "자주성을 파괴하고,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성장과 활력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창조성을 마비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우려를 표했다. 

embed